경계의 아리아
본문
- 전시기간
- 2023. 7. 1.(토) ~ 8. 31.(일) / 62일간
- 관람료
- 무료
- 전시장소
- 제2전시실, 제3전시실
- 관람시간
- 09:00 ~ 18:00
- 참여작가
- 이기원, 전현숙 작가
- 작품장르
- 입체 설치, 평면 회화(서양화)
- 작품수
- 50점
‘경계의 아리아’ 전시를 기획하며
내재된 초상의 발현
공명
화순군립 운주사문화관 학예사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직접 보고 만나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누구나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특별해지는 경험이었다. 부재를 통해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어둠이 있어야만 빛을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한 화순군립 운주사문화관의 개관 기념 첫 전시는 이기원 작가와 전현숙 작가를 초대한 ‘경계의 아리아’다. ‘아리아’는 반주에 맞춰 부르는 독창곡 혹은 이중창을 말한다. 두 작가의 작업에 ‘치열한 삶의 경계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솔로 혹은 듀엣의 느낌으로 개별 주인공인 작가님들의 전시가 읽히기를 바라면서 전시 제목을 ‘경계의 아리아’로 정하게 되었다.
작품은 예술가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발전하고 변해간다. 예술가의 감수성과 경험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탄생된 작품은 관람객에게 감동과 환희를 선물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작가와 작품은 성장하며, 다시 그 성장은 작가와 작품을 변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두 작가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의 감동과 환희를 주었다. 이기원 작가는 40년 이상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작품으로 보여지는 작가의 정신 세계를 표현했고, 전현숙 작가는 크로키로 시작해 독창적인 캐릭터와 컬러를 가진 탄탄한 평면 작품들을 줄줄이 내놓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예술작품은 내면에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거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우울감이 창작 과정에 결합되면 한계와 미래 가능성에 대한 자각과 탐구로 이어지고, 작가는 그것을 정제하여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이것은 작가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던 초상이 작품이라는 형태로 표상되는 것이다. 때문에 예술 작품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작가의 삶에 내재된 초상은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여 발현된 초상에 공감하고 치유받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랜 시간 인간의 내면과 관계성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한 흔적을, 열정적인 작품으로 선보여 온 이기원, 전현숙 작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 내면의 초상을 만나는 ‘경계의 아리아’ 전시 관람이 여러분께 따스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기원 -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비언어적 매체 실현가
이기원은 소재나 모티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왔다. 작가는 시각예술의 기법과 원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여 폭넓은 범위로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고인돌“을 소재로 한 평면 연작을 선보인다. 능주로 삶의 근간을 옮겨 온 그가 가까이에서 자주 만날 수 있고, 관심이 가는 주제를 선택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2000년 유네스코(UNESCO)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대한민국 고인돌 유적지 중 가장 많은 고인돌을 보유하고 있다. 지름 5.1m, 높이 6.7m인 거대한 핑매바위는 선사시대의 엄청난 기술과 예술적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많은 세계인들이 유적지를 방문해 선사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고인돌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이기원의 작품은 늘 그의 삶 속에서 발현되었다. 대학 졸업 후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뇌리에 각인된 80년 5월의 시간을 놓을 수 없어 <오월의 꽃>, <대동세상>, <그날의 함성>, <임산부의 죽음>, <동지여 내가 있다> 같은 현실 참여적 작품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주제를 놓지 못하고 있다. ‘민중 미술’, ‘종교’, ‘초상’, ‘웃는 아이’시리즈를 거쳐 ‘고인돌’에 다다른 이기원 작가의 작업량은 놀라울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2008년 [고기 두 마리展], [생명의 빛] 전시는 신앙의 간증과도 같은 영적 소통의 결과물이었다. 이후에도 작가는 2012년 ‘아름다운 얼굴展’, 2016년 ‘웃는 아이’ 시리즈 등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삶과 예술이 밀접하게 얽혀있음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이 모든 작업의 기저에는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철학적 고민이 녹아 있다.
이기원 작가는 특히 설치 작업에 있어서 독창적인 재료와 기술을 사용한 재미있는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공간과 대상을 융합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기억의 조작(2005)’, ‘잠식(2005)’, ‘낮은 데로 오심(2008)’, ‘열두 광주리(2008)’ 같은 작품들은 인상적인 아우라를 남겼다. 여러 재료의 특성을 살려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고 지식과 기술을 융합하여 균형을 조절한다. 전통적인 작품 개념에서 자유로운 그는 대상의 형상과 구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는 즐거운 창작자다. 또한 미학적인 감각과 다양한 시도를 담은 작품으로 자기 주장을 완성하는 강력한 비언어적 매체 실현가라 할 수 있다.
전현숙 –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자유로운 꿈을 꾸다
전현숙 작가의 최근 작업은 ‘그 여자’ 시리즈다. 뒷모습 혹은 앞모습으로 보여지는 ‘그 여자’는 상처와 외로움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한 삶의 여정에서 열정적으로 진득한 시간을 견뎌 온 ‘그 여자’의 뒷모습은 아프고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목덜미를 뒤덮은 가시, 문신, 피어싱이 자꾸 보는 이를 찌른다. 아프고 불편하고 찔린 상처에선 피가 흐른다. 숏컷의 검은 머리칼은 각을 살려 막 베어낸 것처럼 단정하고 선명하다. 귀에는 커다란 귀걸이가 걸려 있다. 구멍 뚫린 귓볼에 매달린 귀걸이는 반복된 염원으로 빚어낸 단단한 보석이다. 검은 배경인지 공간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목덜미가 클로즈업 된 뒷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 여자’의 앞모습은 거울 속에 갇혀있다. 무표정에 담긴 말 없는 아우성이 심장을 훅 치며 들어온다. 절제된 우울과 정제된 얼굴을 가진, 시간도 공간도 배제해 버린 친절하지 않은 이미지의 단면은 강렬하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눈도 코도 입술도 볼연지까지 동글동글 온화한 느낌을 준다. 이순(耳順)을 넘긴 ‘그 여자’의 내면은 오히려 말랑해진 것 같다. 상처 입은 뒷모습을 뛰어넘어 마주한‘그 여자’의 이미지는 묘한 위로와 안도를 준다. 무표정 속에 담긴 부드러운 응시는 잘 익은 복숭아처럼 달큰하다.
전현숙 작가의 초기 작업은 크로키였다. 그리는 행위 자체와 타인의 맨몸을 빠르게 스케치하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보다 솔직하고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로 작품을 구성하면서. 정돈된 이미지와 담백한 색상 선택으로 인간 본연의 감정을 표현했다. 우울하고 무표정한 모습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삶과 관계, 또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결정되는 인간 삶에 대한 메타포다. 따라서 작품에서 그려지는 자화상은 개인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자화상과 소중한 물건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독특한 구성과 특유의 강렬한 캐릭터는 감상자와의 교감을 이끌어 내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전현숙은 상처받은 자신의 삶을 솔직 담백하게 드러냄으로써 공감과 위로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다. 2011년 <꽃들아! 춤을 추어라>에서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자아를 성찰하고 근원적인 인생의 이상을 표현해내고자 하였다, 중년 여성 대신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순수성과 자아성찰, 그리고 이상적 삶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각시탈과 양반탈은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역할과 관습에서 비롯된 억압된 자아를 드러낸 것으로, 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출발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 이전글빛의 감각 23.09.04
- 다음글제5회 호남사진아카데미 사진전 22.12.02